우리가 추방된 세계
무엇이든 첫 경험은 신선하고 강렬하다. ‘셸리’의 『프랑켄슈타인』을 처음 읽은 19세기 사람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이 책을 읽고 느낀 나의 감정이 유사할까? ‘베른’이나, ‘웰스’, ‘헉슬리’ 같은 고전적 의미의 SF작가들의 작품의 이름 정도만 알고 있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SF장르가 이 책이다. ‘리얼리티’의 최전선에 있는 ‘과학’과 온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‘문학’인 소설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을 완전히 깨주었다.작가가 지난 10여 년 동안 여러 플랫폼에서 발표한 10편의 단편소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소설집으로,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린 기존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본 듯한 기시감이 다소 있지만, 소설로서는 참신하고 기발하며 매우 흥미로웠다. 작가가 작품 속에서 구현한 과학적 사유와 소재들이 미래에 과연 실현 가능한지는 차치하더라도 충분히 전문적인 식견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, 다소 이성적으로 치우쳐 흐를 수 있는 SF의 경향성을 작가 특유의 예민한 감성과 유려한 문체로 균형을 잡았다. 그리고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‘윤리적 아포리즘’이 비교적 명백하게 드러나서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한 작품도 있었다.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지적 유희를 맘껏 뽐내는 ‘순수 예술’보다는, 휴머니즘이 소외된 과학기술에 경종을 울리는 ‘참여 예술’에 더 가까운 듯하다. ‘세월호 사건’이 연상되지 않을 수 없는 ‘우리가 추방된 세계’, 원자력 발전의 가장 비극적인 결말과 네트워크 세계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‘순수한 배드민턴 클럽’, 판타지나 추리소설보다도 흥미진진했던 ‘발푸르기스의 밤’,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‘파수’, ‘나는 별이다’, ‘모자를 벗지 않는 사람들’ 등 모든 작품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만큼 훌륭했지만, 독자로서 나 개인적으로는 가까운 미래에 곧 일상이 될 ‘인공지능’을 소재로 한 ‘백중’과, 심각한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직접적인 교훈을 담은 ‘서울 대지진’이 가장 인상 깊었다. 교과서에 실려도 될 정도라고 생각했다.SF장르를 처음 접한 초보 독자인 내가 이 책의 작품성과 문학성을 주제넘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, 이성과 감성의 조화, 과학적 사고와 인문학적 상상력의 결합의 모범적인 사례를 누군가가 소개해 달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이 책을 추천하겠다.
한국을 대표하는 하드 SF 작가가 그리는
낯설지만 익숙한 우리 세계, 혹은 우리가 추방된 세계
더 이상 신생아가 태어나지 않게 된 근미래 지구. 전 세계 학생들의 수학 여행이 4월 16일 같은 날짜, 같은 시각으로 동시에 잡힌다. 이상함을 느낀 아이는 부모에게 이유를 물어보지만, 부모는 수학 여행을 다녀오면 알 거라고, 선생님 말씀만 듣고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. 우여곡절 끝에 탄 배가 출발하려 하자, 항구에서는 총격전이 벌어지고 연이어 발생하는 알 수 없는 사건들…. 아이들에게는, 그리고 멸종을 코앞에 둔 인류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.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. SF 마니아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한 수준급의 단편 작품을 각종 지면에 발표해왔고, 한편으로 해외의 최신 SF 작품을 국내에 활발히 소개해 온 김창규 작가의 소설집이 드디어 나왔다. 세 차례 열린 SF 어워드에서 단편 부문 대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한국 단편 SF의 절대 강자. 사이버펑크와 하드 SF를 넘나들며 탄탄한 과학적 기반을 감추지 않지만, 과학적 식견보다 더 탁월한 스토리와 감성으로 무장한 김창규의 작품 세계를 만나본다.
우리가 추방된 세계
순수한 배드민턴 클럽
업데이트
백중
발푸르기스의 밤
서울 대지진
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
파수
나는 별이다
모자를 벗지 않는 사람들
해설 : 감성 하드 SF 작가의 시대가 온다
작가의 말
수록작품 발표지면